70대 어르신 혼자 사물놀이 한다고요? (유춘수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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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 깽깽깽! 깽!~ 둥 둥 둥! 징~징~’
전주시 삼천동 양지노인복지관. 어르신을 위한 사물놀이 공연봉사가 한창이었다. 옆에서 사물놀이를 지켜보던 70대 어르신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재주가 기가 막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거기에 꽹과리에 징까지. 전국에서도 이런 풍물가락은 없은게. 요새 말로 인기가 짱이란게.”
바로 혼자서 사물놀이를 한다는 나홀로 사물놀이꾼, 유춘수 어르신(72)이었다. 자다가도 장단가락만 들리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국악사랑이 대단한 그는, 어릴 적 꿈인 사물놀이 공연을 위해 혼자서 네 명 몫을 할 수 있는 사물놀이 장치를 만들기도 했다.
자신의 사물놀이 연주에 힘을 얻었다며 밝은 웃는 이들을 잊지 못한다는 그는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틈틈이 혼자서 사물놀이 공연 봉사를 다니고 있다. 그게 7년째다. 유춘수 어르신의 지칠 줄 모르는 국악사랑, 직접 만나 들어봤다.
우리 가락에 푹 빠진 늦깎이 국악꾼
“처음 시작할 때는 취미로 시작했죠. 우리 전통가락의 맛을 알고 나니 하루라도 안치면 심심해요. 제 가락에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이고 즐거워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나요?“
그가 어렸을 때에는 명절 때나 동네잔치 때면 우리 가락이 넘쳐났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리만 나면 모두 나와서 신명나게 춤을 추며 놀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어른이 되면 꼭 사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고.
하지만 먹고 살기 바빠 생업에 종사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는 48살이 되던 1986년에서야 장구채를 잡을 수 있었다. 유춘수 어르신은 처음 장구채를 잡던 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장구채를 두드리는데 그 소리가 가슴을 울리더라고.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서 고수, 명창을 찾아다니며 10년간 소리를 배웠어요. 취미로 배우려니까 어디다가 표현을 해야 할지, 우리 가락에 대한 갈증은 여전했죠.”
그러던 1998년 우연히 옛 소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이들을 만나 전주 한빛농악단을 만들었다. 이후 3년 동안 전국을 돌며 꾸준히 무료공연을 했다. 몸이 불편한 환자를 찾아 병원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생업과 공연봉사를 병행하던 회원들이 활동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밥만 먹으면 사물놀이 악기를 두드리는 게 낙이었던 어르신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이젠 혼자도 사물놀이 가능해요”
경쾌한 꽹과리 소리와 장구, 북, 징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의 얼굴에 퍼지던 웃음꽃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 사물놀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결심했다. 2003년 여름의 일이었다.
“혼자라도 공연하자는 생각에 밥만 먹으면 악기를 수십 번 뜯어 고쳤어요. 처음엔 악기 4개를 어깨에 짊어지고 연주할까 고민도 해보고 그렇게 6개월을 연구했죠. 그러다 발로 징을 치고 양 손으로 꽹과리 장구와 북을 한꺼번에 연주할 수 있는 나 홀로 사물놀이 악기를 개발하게 된 거죠.”
이때부터 유춘수 어르신은 20여년 국악인생에 새로운 황금기를 맞게 됐다. 그 길로 매일같이 전주한옥마을, 덕진공원, 경로당, 요양시설, 등 전주일대를 돌며 무료로 거리 공연을 펼쳤다. 가슴이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신명나는 우리 가락으로 뚫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유춘수 어르신의 공연봉사를 자주 지켜봤다는 한 어르신은 유 어르신의 열정에 감탄했다.
“젊은 사람도 봉사하러 다니면 힘든데 저 사람 보면 언제나 청춘 같아. 신명나는 장단을 듣고 있노라면 그때만큼은 근심걱정 싹 사라진당게. 난 일부러 따라다니면서 응원혀.”
젊게 사는 비결? 우리 가락에 심취했을 뿐인데
소리만 들어도 어깨가 들썩거리는 사물놀이를 혼자서 연주한다니 사람들의 호응도 대단했다. 인근 주민들뿐만 아니라 한번 공연 간 곳의 사람들은 ‘사물놀이의 달인’, ‘젊은 오빠’, ‘실버들의 아이돌’ 이라는 별명을 부르며 반가워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면서 공중파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했다. 이제 전주에서 그는 이름만 대도 알 정도로 유명인사가 됐다. 경상도에서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추석엔 전주한옥마을에서 그의 공연을 본 미국 교포가 미국에서도 공연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젊어서는 입에 풀칠하기 바빴는데 늙으니까 주가가 올라가니까 좋아요. 방송에도 나가니까 가족들끼리 경기도, 강원도 멀리 놀러가도 TV에서 봤다며 사람들이 알아보니 연예인 안 부럽죠.”
늦깎이로 사물놀이를 배웠지만 실력은 대단하다. 2006년 전국 고수대회 노인부 대상을 시작으로 경남사천 세계타악기축제 장려상, 김제지평선축제 실버상 등 10개가 넘는 각종대회를 휩쓸기도 했다.
하루 종일 공연을 하고 연습을 하다보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이 먹었다고 집에서 화투나 치고 술 마시면 뭘 하느냐”며 “이렇게 활동하면 건강에도 좋고, 무엇보다 재미있으니까 힘든 줄을 모른다”고 말하며 웃었다.
내 마지막 꿈은 “우리 것을 지키는 농산물 홍보대사”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이제 내 나이 72살이라 유통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며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은데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농산물 홍보대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통의 고장 전주는 소리뿐만 아니라 먹을거리도 많아요. 전주비빔밥부터 막걸리도 있죠. 막걸리는 술에 취해 마시기보다는 흥에 겨워서 마시면 더욱 감질 맛 나거든요. 우리 동네인 전주 삼천동 막걸리촌부터 시작해서 전국에 있는 농산물들을 외국인들에게 보면서 들을 수 있는 우리 가락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혼자서 4명 소리를 낼 수 있으니 외국 사람들도 호기심을 가질 겁니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을 가진 유춘수 어르신.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 봉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이를 잊고 발로 뛰는 열정을 보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유춘수 어르신의 신명나는 장단에 맞춰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어깨가 덩실거리는 2010년이 되었으면 한다.
정책기자 박하나(대학생) ladyhana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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